2026년 9월 20일
나는 날마다 죽노라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 짧은 한 문장이지만, 바울의 삶을 통한 신앙의 본질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잘 먹고 잘 사노라”, “날마다 성공하고 승리하노라”는 말에는 익숙하지만, “나는 날마다 죽노라”는 말은 왠지 낯설고 불편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진짜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인지, 생명으로 풍성한 삶을 사는 길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합니다.
먼저 바울은 “내가” 죽어야 한다고 고백합니다. 내 남편이나 아내, 시어머니나 며느리, 다른 집사나 성도가 아닙니다. 인간의 죄들, 살인, 강도, 간음, 도둑질, 거짓 증거 등 많은 품목들을 열거하지만, 모든 죄의 원인은 내 자아입니다. 반복되는 우상숭배의 죄도 욕심과 본능의 자아 때문입니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출20:4) 죄로 인한 심판이 반복되었던 사사 시대도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17:6, 21:25) 자아 때문이었습니다. 죄의 자아를 처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십자가에서 옛 사람이 죽었음을 믿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두 번째, “날마다”입니다. 신앙생활에서 범하는 큰 오류 중 하나가 ‘한 번의 결단’이라는 착각입니다. 나는 예전에 회개했기 때문에 오늘 회개 안 해도 됩니까? 예전에 헌신했으니 지금은 할 일이 없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육신의 호흡이 남아 있는 한 우리의 옛 자아, 욕심, 본능, 자존심은 마치 잡초와 같이 계속 올라오기 때문입니다. 오늘 뽑아도 내일 다시 자랍니다. 어제 십자가에 못 박았던 교만이 오늘 아침 또 다시 고개를 슬며시 듭니다. 사도 바울같이 뜨겁고 확실한 은혜와 체험이 있고, 결심이 강한 사람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내 자아가 죽는 것은 어제로 끝나는 사건이 아니라 오늘도 내일도 “날마다” 계속 반복해야 하는 믿음입니다.
마지막으로 “죽노라”는 선택이 아니라 명령인데, 그것만이 영원한 생명으로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 부활의 생명으로 살기 위해서 옛 사람이 죽어야 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예수님 새 생명의 풍성함을 누리기 원한다면 반드시 먼저 옛 사람의 자아가 죽어야 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Not I But Christ의 믿음으로
살 수 있는 길이 바로 ‘예수님을 증거’ 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 엘살바도르 선교 간증입니다. “단기선교를 통해 처음 보는 그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함께하며 그들은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축복을 빌어주고 우리는 그들을 위해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하게 됩니다. 그 자리엔 오직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영광만이 있을 뿐입니다.” 샬롬!
